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『 불꽃처럼 나비처럼 』
「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사랑이 시작된다. 」
이 영화 『 불꽃처럼 나비처럼 』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멜로 영화였다.
하지만 거기에 가슴 아픈 역사적인 사건이 존재하고 있다. 바로 명성왕후 시해 사건이다.
그 시해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무사와 왕후간의 사랑을 픽션으로 만든 영화 인 것이다.
< 을미사변 당시 일본 낭인들 >
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동기에는 내 기억 속에 「 민비 」라는 호칭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.
참으로 부끄러운 기억이 아닐 수 없다.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에 그 호칭은
잘못된 호칭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. 그러면서 일본이 명성왕후를 비하하기
위해 일부러 그 호칭을 만들었다는 것 이었다. 안타깝게도 그 호칭은 우리 윗 세대 분들
까지는 계속해서 듣고 자랐던 모양이었다. 선생님께서 잘못된 호칭이라고 수정을 해 주시는 걸 보니 말이다.
영화 속 호위무사 또한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. 바로 홍계훈 장군 이라는 분이다.
홍계훈 장군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났을 때 명성황후를 끝까지 지키다 순국한 인물
이라고 한다. 아마 거기에서 이 영화의 모티브가 시작된 것 같다.
아래의 대사에서 호위무사(무명)가 한 말은 가히 명대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.
명성왕후 : 무명 어찌하여 이 곳에 왔나요?
호위무사(무명) : 저의 칼이 어찌 살지를 정했기 때문 입니다 마마.
명성왕후 : 그게 무엇입니까?
호위무사(무명) : 그대를 지키는 것이오.
한 낱 이름없는 무사로써 일생을 살아오던 무명(조승우)은 민자영(수애)이 궁궐로 들어가게
되자, 그 뒤를 따르게 된다. 자신의 여자로 만들지 못할 바에야 그 여자를 평생 곁에서 지켜
주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. 스스로 세운 명분에 따라 무사는 한 여자를 위해 기껏 자신을
희생 할 각오를 했던 것이다. 짐작가능하겠지만, 이미 그의 운명은 정해져 있던 것이다.
서서히 그의 운명의 순간은 점점 다가오게 된다.
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이 장면 또한 명장면 임을 여실없이 보여주고 있다.
일본군이 궁궐을 침범했을 때, 명성왕후 앞에서 그들을 막기위해 다리의 신경 자르는
장면에서 무명의 절박한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진다.
무 명 : 내가 있는 한 너희들은 단 한걸음도 왕후께 다가설 수 없다.
일본군 두목 : 신경을 잘라 다리를 포기하고, 고통을 줄이겠다.
하지만 너희 조선은 결코 우리 일본을 넘어설 수 없다.
끝까지 칼을 휘두르며 버티던 무명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며,
칼을 들어 자신의 발등에 찍고만다. 한 발자국도 이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강한 의지였다.
명성왕후(민자영) : 나는 너희가 두렵지 않다.... 절대... 오늘은... 나를 잊진말거라
나는 조선의 국모 민자영 이다.....
위의 대사는 많이 회자되고 있는 내용이다.
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는 처참하게 살해 되고 만다.
이 영화 또한 그런 가슴 아픈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영화화 하였기 때문에
그 속에서 그려지는 남녀간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 더욱더 애절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.
이 글을 포스팅하면서 문득
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을 감히 생각 해본다.